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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에게 기도는 <행 4:23~31>
이기봉 담임목사 2018-06-17 추천 0 댓글 0 조회 219

본문: 사도행전 4:23~31

제목: 사도들에게 기도?

 

 삼상23장에 보면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피생활을 할 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블레셋 국경지대에 있는 유대 그일라를 침략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도와주어야 하는가?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앞에 서게 됩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숨어 있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의 말도 가만있자고 합니다. 지금 자신들도 도망 다니는 처지인데 굳이 위치를 노출시켜서 사울이 알게 하고 블레셋 까지 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내리는 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고민합니다. 다윗이 그일라 사람을 도왔다가 쓸데없는 일에 말려들어서 일이 어렵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돕지 않으면 꼭 해야 될 일인데 하지 않고 외면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약탈당하고 있는 그일라 사람들을 도울 것인가 아니면 그냥 못 본채 할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 서게 됩니다.

 

이때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을 특징짓는 것이였고 다윗의 인생을 승리의 인생으로 이끈 원동력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말씀으로, 상황으로, 사람을 통해 또 내적인 확신을 주십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다윗이 기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는 것이였습니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삼상 23:2)

하나님의 뜻은 알았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자니 따라오는 위험이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주변 사람들이 다 반대합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삼상21:3) 지금 다윗이 사울에게 쫒기고 있는 형편인데 사울을 피해 다니기도 어려운데 괜한 일에 끼어 들었다가 굳이 블레셋 까지 적으로 만들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블레셋 사람을 치면 사울에게 다윗의 위치가 노출됩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맞습니다.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 어떻게 남의 일까지 신경을 쓰냐는 것입니다. 이때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다시 기도합니다. 다시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다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다시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삼상 23:4) 우리가 이런 상황 앞에 설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가 생각하기에 맞지 않아 보인다거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면 댓가를 치러야 하거나 수고가

따라올 것이 예상되어지면 드러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 한 후에 순종할 때 예상되어지는 어려움이 있으면 다시 기도해야 합니다.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다윗이 기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순종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난 뒤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성적 판단이 하나님의 드러난 뜻이 맞지 않아 보이거나 순종할 때 어려움이 예상되어지면 순종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숨겨진 뜻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를 치면 위험해 진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모르실리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다윗을 이런 위기 가운데로 내 보내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다윗에게 다윗이 아무리 위험한 위기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다윗에게 경험시키고 다윗을 더 능력있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이 안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안전한 곳에 가만히 숨어 있으면 안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도전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폭풍 속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안전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이 확인되어지면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 나의 생각과 맞지 않아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이성적 판단으로 제한해서 순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순종해서 능력주시어서 그것이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시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일어서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계산의 범주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길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이 확인되어지면 순종하게 하셔서 그 순종의 삶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알고 그렇게 도전적인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다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기도하는 것은 좌절하고 포기하고 절망할 수 있는 난관을 뛰어 넘게 만듭니다.

 

1. 사도들의 위기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날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킨 뒤 일어난 앉은뱅이로 인하여 놀라서 솔로몬의 행각에 모여든 무리들에게 베드로가 이 일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인 하여) 일어난 일임을 밝히고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말할 때 대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는 것과 예수님을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하는 것을 싫어하여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둡니다. 위협하고 협박해서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합니다. “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

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4:17~18) 사도들이 놓였습니다. 놓여서 그 동료들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렸습니다. “다 알렸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냥 알렸다 라고 말씀해도 되는데 그들의 말을 다 알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한 말과 그 말의 의도 그 말을 하는 그들의 분위기 등을 다 알렸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한 말과 말의 의도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듣는 사람들이 그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게 말했다는 말씀입니다. 그 위에 있는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교회에 다 말했다는 것입니다. 24절에 저희가 듣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 말했다는 것은 사도들이 제사장과 장로들의 말을 남김없이 그대로 다 말했다는 의미가 그 안에 들어 있고요. 이 말을 한 그들의 살벌한 분위기와 그들의 의도를 다 말했다는 의미가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았다는 것입니다. 희미하게 어설프게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 아주 분명하게 알아들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도들이 전한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말을 아주 분명하게 다 알아들었습니다. 그들이 그 말을 다 듣고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의 의미와 분위기를 다 알고 교회가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대충 알고 한 것이 아니라 아주 분명하게 그들의 말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명령하시고 부탁하신 일을 감당하다가 그 일을 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납니다. 사도들이 이 위기 앞에서 어떻게 합니까? 듣고 난 뒤에 그들이 어떻게 하느냐 하면요 기도합니다.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합니다. 큰 위기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당면한 위기였습니다.

 

2. 위기 앞에서 사도들이 한 일

그들이 사도들의 말을 다 듣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합니다. 사도들이 기도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기도했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는 어떤 것인가?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진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는가? 물론 그 중요한 잣대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그 믿음을 점검할 수 있는 내가 예수님을 믿는 자라는 것을 점검할 수 있는 그 잣대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지를 점검할 수 있는 중대한 시금석이 오늘 본문 안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나를 시험하는 괴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평탄하게 잘 풀리고 만사가 형통할 때에는 그럭저럭 신앙생활을 잘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 위기에 부딪히게 되면 난생처음으로 종교가 자기에게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위기가 닥치게 되면 내가 믿는 이 종교가 나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리 눈앞에 닥친 상황 시련과 역경 곤란 죽음 등 우연히 우리 앞에 닥친 일들은 우리의 신앙이 과연 진정한 신앙인지를 검증하는 시금석 역할을 합니다.

제가 기도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다른 것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다소 축소해서 말씀드리더라도 그것

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그 의미들까지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결정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 주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습관화 되어 있는 전통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그 신앙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행이나 도덕성도 우리가 곤경에 빠졌을 때 우리를 도와주거나 지탱해 주지 못합니다. 남에게 선행을 많이 베풀었다는 사실도 위기 가운데 빠졌을 때 궁극적인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체험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가 서로 크게 싸우는 모습이 나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항상 그럴듯한 쇼를 벌일 수 있었습니다. 그 쇼가 그럴듯해서 참선지자들보다 인기를 누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험의 때가 닥쳤을 때 거짓 선지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갈멜산 위에서 엘리야와 거짓 제사장들이 벌이는 대결이 나옵니다.거짓 제사장들은 자기들 앞에 닥친 도전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믿는 신은 없습니다. 다 우상입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조각해서 만든 신상과 녹여서 만든 신상들입니다. 생명이 없는 것들입니다. 방알신이 어디 있습니까 아세라 신이 어디 있습니까? 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참선지자였던 엘리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 왔습니다. 사도행전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 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 수중에 돈이 있고 만사가 잘 풀릴 때에는 간이라도 빼줄 듯이 하던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게 되면 슬그머니 도망쳐 버리는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신앙적 습관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됩니다만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선행요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만 다른 데서도 합니다. 체험요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만 다른 데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모든 길이 막히고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시련의 때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오늘 말씀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진정한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이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합니까? 기도합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도들은 기도였습니다.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위기를 만나면 낙심합니다. 포기합니다.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내 힘으로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가보려고 합니다. 사도들은 틀림없이 이런 상황이 또 와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기도가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기도로 살고 있고 기도로 사역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우리는 기도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기도가 없이도 사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느날 제 인생 가운데서 기도를 빼 보았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누수가 생기는가? 내 삶의 모양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기도가 없어도 살아가는데 사역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상적인 기도생활을 하고 있다면 기도를 빼면 삶이 확 달라져야 합니다. 두려운 것입니다.


 내 삶에서 기도를 빼도 기도가 없어도 아무 문제도 없지는 않을까를 생각하자 두려움이 확 밀려드는 것입니다. 혹시 나는 기도 없이 살고 있지는 않은가? 기도없이 산다고 할 때 그 기도가 꼭 새벽기도 합심기도 통성기도 규칙적인 기도 이런 기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순간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기도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우리의 신앙을 검증하는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는 우리의 기도생활이 어떠한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에 대해 우리는 막연한 개념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자세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릎을 끓으면 기도하는 것이고 무릎은 끓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세를 어떻게 하느냐를 기도의 본질로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자세나 태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기도는 아닙니다.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무릎을 끓고 있으면 스스로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무릎을 끓고는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니면서 온갖 상상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은 의식하지 않은 채 자기말만 늘어 놓습니다. 생각없이 말만 반복하는 것을 기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말을 하는 것이지 기도는 아닙니다. 의심하는 것도 기도는 아닙니다. 우리가 위기 가운데서 무릎을 끓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에 정말 뭔가 있기는 있는 것인가? 응답이 될까? 정말 기도를 듣고 계시는 분이 있을까? 그래서 무릎을 끓고 의심과 싸우다가 시간을 다 보내어 버립니다. 기도 중에 의심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만 이 의심에 붙잡혀서는 안됩니다. 의심이 일어난다는 것에 대해서는 신앙이 분명하지 않을 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지 않을 때 의심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만 믿음은 이 의심을 죽입니다. 믿음이 분명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 간단하고 명료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이겠다는 위협속에서도 하나님을 확신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침착하고 분명하게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 아뢰었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께 아뢰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신뢰로 아뢰는 것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 전체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3. 기도는 사도들에게 어떤 것이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게 했고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히게 해 주었습니다. 14:22-33에서 마14장에 베드로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주님을 보느냐? 바람을 보는냐? 하는 것이였습니다. 주님을 보고 갈 때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바람을 볼 때는 물 속에 빠집니다. 바람과 파도를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과 파도를 보지만 그보다 더 큰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바람과 파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과 파도보다 더 큰 하나님을 바라 보셔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은 위기를 상황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고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위기를 뛰어넘게 하십니다. 계속 살고 기도로 사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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